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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던진 질문, 정의는 누가 결정하는가

by ideas57437 2026. 1. 20.

**지옥**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인간 사회의 가장 불편한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 작품이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지옥의 사자’와 예고된 죽음은 단순한 공포 장치가 아니라, 인간이 믿음과 공포 앞에서 얼마나 쉽게 폭력적 선택을 정당화하는지를 보여주는 도구로 작동한다. 이 드라마는 죄와 벌, 신의 뜻이라는 개념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소비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결국 〈지옥〉은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지옥을 보여주며, 정의와 신념의 경계가 무너질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를 묵직하게 묻는다.

 

〈지옥〉이 던진 질문, 정의는 누가 결정하는가
〈지옥〉이 던진 질문, 정의는 누가 결정하는가

서론: 설명되지 않는 공포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하는가

드라마 지옥은 초자연적인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공포의 중심은 괴물이 아니라 인간에게로 이동한다. 이유도 기준도 알 수 없는 ‘지옥행 선고’와 그 집행은 처음엔 충격적인 사건처럼 보이지만, 드라마는 곧 이 현상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반응에 집중한다. 사람들은 설명되지 않는 공포 앞에서 질문을 던지기보다, 빠르게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그 의미는 곧 신념이 되고, 신념은 집단의 규칙으로 굳어진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사정이나 맥락은 쉽게 지워지고, 사건은 단순한 선악의 구도로 재편된다. 〈지옥〉의 서론이 인상적인 이유는, 공포 그 자체보다 공포를 해석하는 인간의 태도가 더 위험할 수 있음을 조용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는 순간, 사회는 안도하지만 동시에 잔혹해진다. 드라마는 이 안도감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서두부터 차갑게 제시한다. 혼란을 견디기 어려운 인간은 확실한 답을 원하고, 그 답이 누군가를 희생시키더라도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지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묻는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정의와 믿음은 과연 진실을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두려움을 가리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가. 이 서론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의 출발점이 되며, 시청자를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고민 속으로 끌어들인다.

본론: 공포가 신념이 되고, 신념이 폭력이 되는 구조

드라마 지옥의 본론은 초자연적 현상 그 자체보다, 그 현상을 둘러싼 사회의 반응 구조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지옥행 선고는 이유도 기준도 제시되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 공백을 견디지 못한다. 설명되지 않는 상태는 불안을 키우고, 불안은 곧 해석을 요구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는 단정적인 언어다. 드라마는 이 언어가 얼마나 빠르게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위험한 방향으로 이끄는지를 보여준다.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공포는 질서로 바뀌고 개인의 죽음은 하나의 사례로 소비된다. 문제는 이 질서가 검증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질문을 멈추고, 믿음을 선택한다. 믿음은 곧 기준이 되고, 기준은 낙인을 만든다. 지옥행을 선고받은 사람은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심판받은 존재로 취급된다. 이 과정에서 폭력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집단의 정의로 정당화된다. 드라마는 특히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폭력의 일부가 되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정의를 지킨다고 믿는 순간,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각은 무뎌지고 책임은 신의 이름 뒤로 숨어버린다. 또한 침묵하는 다수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적극적으로 가해하지 않더라도, 방관은 폭력이 지속되는 환경을 만든다. 〈지옥〉의 본론이 전달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설명되지 않는 공포보다 더 위험한 것은, 공포를 빠르게 의미로 고정해버리는 인간의 태도다. 신념이 질문을 대신하는 순간, 사회는 스스로를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결론: 지옥은 선택하지 않으면 멀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가 끝내 남기는 결론은 초자연적 공포의 정체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위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설명되지 않는 사건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판단을 서두르는지, 그리고 그 판단이 얼마나 빠르게 누군가를 배제하고 폭력화하는지 〈지옥〉은 끝까지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사자가 등장할 때가 아니라, 사람들이 더 이상 질문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순간이다. 불안을 견디는 대신 단정적인 해석을 붙이고, 그 해석을 정의라 부르며 집단의 규칙으로 굳히는 과정은 사회를 빠르게 안정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정은 누군가의 삶을 희생시킨 대가로 유지된다. 이 드라마는 정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정의가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을 묻는다. 질문할 수 있는 용기, 불확실함을 견디는 태도, 그리고 힘없는 개인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윤리다. 이런 조건이 사라질 때 정의는 신념이 되고, 신념은 폭력이 된다. 〈지옥〉의 결말이 불편한 이유는, 그 세계가 완전히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에서도 종종 공포 앞에서 성급한 의미를 붙이고, 그 의미를 통해 안도해왔다. 이 드라마는 말한다. 지옥은 외부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선택을 반복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그래서 이 작품은 끝난 뒤에도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다음번 두려움 앞에서, 또다시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질문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 그 물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한, 〈지옥〉은 단순한 장르물이 아니라 사회를 향한 경고로 오래 남는다.